논단 |
미술사논단56 호 |
제목 |
한미재단의 1958년 뉴욕 전시회 후원과 그 의미 |
원어 제목 |
The American-Korean Foundation’s Sponsorship of the New York Exhibitions in 1958 and Its Meaning |
주제 분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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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 유형 |
학술논문 |
저자 |
정무정 鄭茂正 지음 |
발행일자 |
2023.06.30 |
기본언어/원문언어 |
한국어/ |
수록면/분량 |
65-86쪽 / 총 22쪽 |
국문초록 |
1958년 초봄에 뉴욕의 메트로폴리탄 미술관과 월드하우스 화랑에서 개최된 《국보전》과 《현대한국회화전》의 후원자 목록에는 한미재단이라는 단체가 등장한다. 한미 양 국민을 문화, 사회 및 경제적으로 결속시킬 목적으로 1959년 9월에 창립된 한미재단은 전쟁고아, 미망인, 장애인, 상인군인, 부산 화재민 등을 위한 긴급 구호와 지원 위주의 활동을 전개했다. 따라서 1958년 뉴욕에서의 전시에 대한 한미재단의 후원은 다소 이례적이라 할 수 있다. 전반적으로 한미재단에 관한 기존의 연구는 1차 사료에 대한 접근의 부재로 인해 연구 주제와 시기가 제한되는 한계를 드러낸다. 본 논문에서는 미주리 주립역사협회를 방문하여 그곳에 소장된 하워드 A. 러스크 문서를 검토하고 이를 바탕으로 한미재단이 1958년 뉴욕에서의 전시를 후원하게 된 배경을 파악해보고자 한다. 한미재단의 회계보고서를 살펴보면 1955년부터 재정적자가 나타나고 경상비의 비중이 높아지는 현상이 나타난다. 이러한 재정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한미재단은 사업 방향을 새롭게 정립하고 한미간의 문화교류를 본격적인 사업의 범주에 포함하였다, 이는 한국문제에 관한 지속적 연구의 지원, 한국과 다른 나라의 경제 관계에 관한 체계적 연구의 지원, 미국과 한국의 상호 역사, 문화에 관한 학문적 연구의 장려, 양국의 미술, 음악, 문학 등 문화교류 장려, 미디어를 통한 한국문제 관련 비당파적 논의 등과 같이 재단 창립 초기에 구상했던 사업의 본격화를 의미했다. 1958년 뉴욕에서 개최된 《국보전》과 《현대한국회화전》에 대한 후원은 이러한 활동의 일환이었다. 그러나 재정위기 상황에 대처하려는 방편으로 본격화한 문화 지원사업에서 한미재단은 문화교류라는 본래의 취지보다는 재단의 새로운 정체성을 알리고 그에 부합하는 새로운 후원자층의 확보에 더 관심을 두었다. 스카스데일 프로젝트도 한미재단의 존재와 역할을 알리고 후원자층을 넓히려는 목적에서 진행된 이벤트였다. 따라서 재정악화를 극복하기 위해 시도된 문화사업이 확장성을 갖기에는 한계가 있었다. 미국 재활의학의 아버지로 평가받는 러스크 이사장의 인맥을 중심으로 구성된 이사진도 재단의 사업범주가 교육, 보건, 복지 분야로 고착화하는 데 공헌했다. 《국보전》, 《현대한국회화전》 그리고 스카스데일 프로젝트가 보여주듯, 한미재단을 이끌던 임원들에게 문화예술 사업은 홍보와 모금캠페인의 수단이라는 의미가 더 컸다. 그렇다고 한미재단이 교육, 보건, 복지 분야에서 수행한 사업의 의미가 퇴색되는 것은 아니다. 특히, 한미재단이 지원한 4-H 클럽과 농촌개발사업은 새마을 운동의 모태로서의 가치가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 미주리 주립역사협회에 소장된 러스크 문서를 토대로 교육, 보건, 복지 분야의 연구가 활발해지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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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어초록 |
In the early spring of 1958, an organization called the American-Korean Foundation (AKF) appears in the list of sponsors for the exhibitions Masterpieces of Korean Art and Contemporary Korean Paintings held respectively at the Metropolitan Museum of Art and the World House Galleries in New York city. Established in September 1959 with the long-range objectives of bringing the peoples of Korea and the United States closer together, In its early stages, AKF carried out mainly emergency relief activities for war orphans, widows, the disabled, and wounded soldiers. Therefore, the AKF‘s sponsorship of the New York exhibitions in 1958 was somewhat unusual. In this paper, I will examine the Howard A. Rusk papers stored in the State Historical Society of Missouri, and try to understand how AKF came to sponsor the New York exhibitions in 1958. The AKF’s accountants’ reports shows that the ratio of operating expenses to program expenses began to increase, resulting in budget deficits in the mid-1950s. In order to overcome this financial crisis, AKF made a readjustment plan by which it drastically cut its staff and office space and divert its attention to cultural programs as a long-range project. Sponsorship for the exhibitions Masterpieces of Korean Art and Contemporary Korean Paintings were part of these activities. While carrying on its cultural programs, however, AKF seemed to aim for the effect of publicizing its new projects and securing a new supporter group, rather than the original purpose of cultural programs. The Scarsdale Project was also an event which was held to publicize its existence and to expand the number of supporters. In other words, for the officers who led AKF, cultural programs were merely a means of publicity and fund-raising campaigns. However, the significance of the projects conducted by AKF in the fields of education, health, and welfare is not diminished. Based on the Howard A. Rusk papers in the State Historical Society of Missouri, it is hoped that research in the fields of education, health, and welfare will be further purs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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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문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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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워드 |
한미재단, 하워드 A. 러스크, 《국보전》, 《현대한국회화전》, 월드하우스 화랑, 스카스데일 프로젝트 |
PDF 문서 |
논단56_정무정선생님.pdf |